최운형은 2001년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미술학부 학사를 졸업하고, 2007년에는 예일대학교에서 석사를 졸업하였다. 국내 작가들 중에 사실 예일대학교 석사를 졸업한 작가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최운형은 국내 미술학도들이 이론 공부를 하면서 책에서나 접했던 멜 보크너(Mel Bochner)와 피터 할리(Peter Halley) 등에게 직접 배우며 유학 시절을 보냈다.
혹독하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는 멜 보크너 때문이었는지 혹은 낯선 곳에서 여성으로서 동양인으로서 겪었던 일들 때문이었는지 당시의 경험들은 유학 이후 이어져오고 있는 회화 시리즈에 자연스럽게 반영이 되고 있다. 갤러리구와는 2014년에 광주 비엔날레에서 처음 인연이 이어졌는데, 그 당시에는 괴기스러움이 가득한 회화 작업을 선보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긴장감을 괴물이 되어가는 여성으로서 표현하였던 몬스터 시리즈였다. 한편으로는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이지만 거세를 한다든지 박제를 하는 강한 행동의 모습들은 매우 위트있게 그려진다.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지만 누군가의 상상 속 스토리를 넣어 최운형 작가의 스타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이번 갤러리구 전시에서 최운형은 이전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보다 세련된 어법으로 표현된 세 가지 회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언뜻 보면 미국의 개념미술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가로로 찢겨져 있는 커다란 화면, 유난히 사각의 액자 모양이 강조된 작업들, 그리고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fragile'이라고 쓰여 있는 테이프. '레디메이드', '미니멀리즘', '액션 페인팅' 등등의 각종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용어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가겠지만, 근본적으로 최운형의 작업은 회화에 대한 진실된 태도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한다.
< Bad Painting >, < Silence >, < 발정난 그림 > 시리즈로 흐르는 맥락은 작업노트에서 밝힌 '회화는 결국 픽션'이라는 것처럼 'Bad Painting'의 큰 틀 아래에서 여러 가지 스토리가 뒤섞이면서 작가와 회화 작업 사이에서 오고가는 팽팽한 긴장감을 보이는 것이다. 시리즈 제목에서도 짐작되듯이 < Bad Painting >에서는 평면을 슬쩍슬쩍 넘어서는 '찢기'라든지 '테이핑'의 형식으로 회화의 본질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한다면, < Silence >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침묵해야만 하는 여성의 모습을, < 발정난 그림 >에서는 그림을 사달라고 애원하는 회화 작업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작업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캔버스와 작가가 서로 교류하고 관계하는 과정 그 자체로 여겨 주목하였는데, 관계에 대한 결과에 상관없이 아프면 아픈 채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 관계를 겪어 내는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면이 이번 전시에서 읽어내야 할 지점이다.
그레파이트온핑크 편집장 고윤정 Graphite on Pink Editor in chief Yoon Jeong Koh